어버이날 그리고 우리 시어머니의 사랑
아마 한국은 오늘이 어버이 날 5월 8일이다. 그리고 미국은 5월 7일 일요일 아침
며칠 전 부터 생각했다. 5월 4일 부터 마음에 걸렸다. 4일 뒤면 한국은 어버이 날인데 시골에 있는 우리 시부모님께 뭘 보내드릴까 고민 했다. 우리 시부모님은 너무 시골에 사셔서 온라인 쇼핑몰에서 어떤 물건을 주문하면 거기까지는 안 가겠다는 오지에 사신다.
그래서 가끔 선물을 사드릴때 이 물건이 거기까지 배송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먼저 알아보고 주문을 넣어야 한다.
그 고민이 끝나면 또 부모님 반응을 고민 해야 한다.
우리 시아버님은 원래 말씀이 없으신 분이라 시어머님 반응이 문제인데 선물을 보내 놓고 나는 연락을 한 2주나 3주뒤에 한다.
안 그러면 엄청 혼나기 때문이다.
우리 시어머니는 정말 억척 같은 분이셨다.
젊었을 때 대학 졸업하시고 회사 다니시다 거래처 우리 시아버님을 만나셔서 결혼 하셨단다 그리고 아버님이 대기업에서 잘 나가시는 바람에 회사 그만 두시고 집안 일만 하시다가 아버님이 회사를 갑자기 그만 두시는 바람에 갑자기 집안 경제가 걱정 되셔서 아파트 청약, 주식,
부동산으로 돈을 모으셨다고 한다. 소위 '복부인' 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실 나는 한국 문화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걸 잘 모르지만 그때는 그런 사람들이 돈을 모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1년이면 제사를 스무번 쯤 지내는 맏며느리로써 작은 아버님 네분을 한 집에서 같이 살면서 키우시다 시피 하셔서 네분들이 다 잘 되셨고 또, 맏아들 우리 남편 사립 중학교 등록금 내고 과학고 보내느라 무척 고생 하셨다고 한다.
집 근처 바닷가 산책
내 남편은 별로 말이 없다. 그게 우리 아빠랑 정말 똑같다. 나도 말 수가 없는 편이라 나는 그게 정말 편하고 좋았다. 그래서 어느 날 프로포즈를 받고 시골집에 인사를 가자는 말에 우황청심환 둘이서 한 알씩 먹고 인사를 같는데 어머니가 상다리가 뿌러지게 음식을 차려 놓으셨다.
특히 커다란 굴비를 한마리 다 발라서 내 밥그릇에 언저 주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시부모님이 나를 마음에 안 들어 하실까봐 너무 걱정이 됐는데 우리 남편이 잔머리를 썼다.
'엄마, 내 여자친구는 미국인이야.'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흑인이니?' 라고 물어보셨단다.
30대 후반인 노총각 남편이 빨리 결혼 했으면 하셨지만 미국인이란 말에 자뭇 놀라셔서 옛날분 생각으로는 그런 기준이 있으셨나 생각했다.
일단 그래서 난 통과다.
우리 시어머니는 대장부 같으시다. 결혼 후 처음으로 제사라는 행사를 처음 경험했다. 3대가 크리스챤이고 난 미국에서 자라서 이런문화가 너무나 신기했다. 식구들이 다 함께 모이면 40명 쯤 되는데 우리 시어머니는 그 많은 식구들의 음식을 혼자서 다 준비 하셨다.
나는 제사상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오는 친척이 누구인지 낯설고 무섭게만 느껴졌던 시집 식구들에게 인사 시켜 주셨고 난 꼭 소풍을 온 사람처럼 기분이 들떠 있었다.
그리고, 기독교인인 나를 배려해서 절도 시키지 않으셨고 바닥에 앉기 불편하면 식탁에 앉으라고 늘 배려해 주셨다.
모든 일과 짐은 어머님것 인양 그렇게 모든 일을 책임지시는 우리 어머니..
우리는 7년 전 남편 박사과정을 마치기 위해 미국에 돌아 왔다. 하지만 순탄치 않은 과정을 통해 결국 가게를 하게 되었고 그 동안 우리만 생각하느라 시부모님을 못 챙겨드렸다. 결론은 나는 날날이 맏며느리다.
난 한번도 제사를 지낸 적도 없고 시부모님께 따뜻한 밥 한끼를 해 드린 적도 없이 미국에 왔다.
늘 마음에 걸렸다. 시아버님도 첫째 우리 남편도 첫째인데 난 맏며느리 노릇을 못한게
그래서 그 깡촌시골에 계신 시부모님 못 챙겨드린게 정말 죄송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내가 선물 보낼 때마다 역정을 내신다.
너희들이 무슨 돈이 있냐면서 선물 보내시지 말라고, 그 돈있으면 빨리 은행대출 갚고 부자 되라고 하신다.
그리고 우리 시어머니는 나에게 선물을 보내셨다. 내가 먹고 싶어하는 한국 과자랑 반찬이랑 홍삼이랑
그러면서 내가 혹시라도 선물 보내면 역정을 내신다. 늘 검소하고 알뜰하고 당신재산은 우리한테 물려 주셔야 한다고
한푼이라도 아끼신다는 우리 시어머니.
너무 속상하다. 우리 물려 줄 생각해서 우크라이나에도 기부를 조금 밖에 못하셨다는게.
남들은 시어머니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는데, 우리 시어머니는 나한테 제발 전화 좀 하지 말라고
자기 신경쓰지 말라고, 뇌출혈로 쓰러지신지도 모르고 난 미국에서 연락도 못 드렸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말씀 하신다. 이제 어머니는 살만큼 사셨고 이제는 건강도 신경쓰고 있으니
걱정말고 너희들이나 잘있으라고, 내가 미국 며느리라 제사제도도 없애신다고 한다.
사람들은 결혼하면 시어머니가 너무 싫어서 도망가고 싶다는데, 난 고민거리만 생기면
시어머니께 상담 전화를 한다.
나의 해결사 우리 어머니, 그 시골집에서 두분이 어버이날 너무 적적 하지는 않으실지 걱정이 된다. 그래서
카네이션과 한우를 보내드렸는데 또 혼날 것 같다.
이렇게 큰 복 주신 하나님께 또 감사기도를 드려야 겠다. 그리고 우리 시어머님을 위해서도
기도 해야겠다.
'어머니 감사합니다.'